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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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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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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중, 부부 사이 의견 충돌은 늘 발생한다. 아이를 재우는 방법부터 TV나 동영상을 보는 횟수, 음식 소금 간의 정도와 심지어 아이의 옷 두께까지, 지난 30여 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생각하는 '세상 가장 소중한' 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늘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여 우리 부부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늘 의견 충돌이 있다. 


일요일 오전이 그러했다. 필자는 아이가 먹을 생선을 굽고 있었고 180도 오븐에 15분 정도 앞뒤로 구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린내를 없애고자 참기름도 조금 발랐다. 생선을 아이 식판에 내어놓으니 국거리를 준비하던 아내는 약간 붉은 기가 있는 살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프라이팬에 조금 더 굽겠다는 아내의 말에 답을 하지 않는 남편. 두 사람 사이 잠시 냉기가 돈다. 잘 익지 않은 생선을 먹었을 때 아이가 배탈이 날까 걱정하였던 아내와 얼마 전 참기름이 고온에서 열을 받으면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남편 사이에 고요한 무언의 의견 충돌이 있던 순간이었다.

다만 경험 상 이 순간 서로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정말 큰 충돌이 발생한다. 두 사람 모두 침묵 중 서로의 행동을 존중하며 아이의 식사 준비를 마무리했다. 칼럼을 쓰는 늦은 밤 생각해 보니 생선을 어떻게 구웠건 그 뭐 대단한 일이었나 싶다. 늘 침묵 속에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다툼을 방지하는 것이 몸에 익은 아내에게 감사했다.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돌아보면 주로 '말'을 했던 순간이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인데 말을 했던 순간이 가장 후회된다.

가까운 사이에 깊이 생각하지 않은 말들이 남발되어 상처로 남았다. 또 어떤 때는 가깝지도 않은 사이에 굳이 깊은 사정을 파고드는 말들로 경계점을 넘어 거리감으로 남았다. 특히 가까운 가족, 친구들 사이에 나의 말이 상처로 남은 기억들이 참 많은 한 해였다. 대부분 그 말을 듣는 누군가의 삶과 행동을 변화시키려 했던 것 같은데 모두 실패하고 '말을 더 아꼈더라면' 하는 후회만 남은 찰나들이다.

노자의 말씀 중 중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구절이 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으나 말이 많은 사람은 사실 참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삶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순간은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이뤄진다.

침묵은 상대방에게 사고의 순간을 부여하고, 본인의 사고로 내려진 결론은 '나의 알고리즘'이기에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용이하다. 반면 말은 상대방의 사고를 내게 투영시키려는 순간이 되어 모든 이에게 우선적인 거부감을 가져오게 된다. 결국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신데 어느 정도냐면, 너무 말씀이 없으셔서 답답하다는 어머니의 핀잔에 답을 하지 않으실 정도로 말씀이 없으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말이 없던 그의 삶은 정직했고 늘 근면했고 주변 이들에게 친절했다. 가족들의 든든한 울타리로 굳건하였음에도 늘 아내와 자녀에게 부드러운 이였다.

하여 나에게 '삶'에 관해 정직이나 성실 혹은 성공과 자선 등 그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 그 자체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이자 가장 큰 나침반이 되어 있다.

다가오는 2025년 말을 줄이고 침묵과 행동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주변 이들에게 기억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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