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홀로 싸울 수 없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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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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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을 참 좋아한다.
당사자의 생존이 걸린 전장이지만 늘 고요하다. 일방은 거짓을 이야기하고 다른 일방은 진실을 외치지만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분하다. 필자의 성격과 맞아서일까 첫 재판을 들어갔을 때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도 법정에 들어가는 순간은 늘 기대된다.


그러나 법정에서의 다툼은 늘 만만치 않다. 결국 판사의 결정은 법리적으로 판단되며 결국 소위 요건사실에 맞는 증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끔 변호인의 조력 없이 소위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분들을 볼 때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다.


수년 전 필자가 겪은 사건인데 사실관계는 대략 이렇다. A 씨는 의사인 B의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였다. 문제는 의사인 B가 수 천만 원에 이르는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억울했던 A는 물품 대금 지급의 소를 제기하였다.


의사인 B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금 지급 의무가 없음을 다투었는데 그 항변사유는 단기소멸시효 완성이었다. 즉 물품 대금을 변제해야 하는 의무가 지속되는 기간이 도과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A 씨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를 재항변해야 한다. 만일 적절한 재항변사유가 재판 중에 제출되지 않는다면 A 씨의 수 천만 원 물품대금은 공중분해가 되고 만다.


필자가 보기에 A 씨는 이런 재항변이 충분히 가능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았다. 오죽 안타까웠으면 재판장님은 원고인 A에게 “오늘 재판 끝내지 않을 테니 법정 나가면 무료로라도 법률상담할 수 있는 법률사무소에 꼭 가서 법률적인 조력을 구하십시오.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입니다.”라며 원고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A 씨의 고집은 만만치 않았는데 본인이 소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고 소송도 해볼 만큼 해 봤는데 조력이 필요치 않다. 외제차 타고 다니는 B의 상황을 사진으로 제출했는데 내가 준 물건 대금을 못 받는다는 게 말이 되냐"라며 역정을 내는 모습이었다.


다음 재판 기일까지 A 씨의 변호인의 선임되어 출석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필자 생각에 물품 대금 청구소송은 기각되고 B의 변호사 선임비용까지 A가 물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최근 필자가 자주 담당하는 대전 전세사기 사건에 있어 변호인 없이 재판을 하는 임차인들이 보인다. 임차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 사건은 매우 간단하다는 누군가의 섣부른 조언 때문일까. 생각보다 소가가 큰 사건임에도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수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정보를 토대로 소송을 시작하고 있어 보이는 점이었는데 본인의 임차보증금 1억 5000만 원을 임대인, 공인중개사 그리고 공인중개사협회가 연대하여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첫째 문제는 공인중개사협회의 공제증서 상 금액이 1억에 불과하다는 것이었고 둘째 문제는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 매물에 대한 설명 미진에 대한 입증도 제대로 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안타까웠던 재판장님은 원고에게 이대로 소송을 종결하게 되면 원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으니 법률전문가에게 조력을 구하라며 변론 기일을 다시 한번 잡는 모습이었다.
만일 원고가 패소할 경우 1억 5000만 원에 해당하는 약 900만 원에 달하는 변호사 비용을 피고에게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안내한 것이었다. 과연 그분은 재판장님의 사려 깊은 조언을 새겨 들었을까.


말기 암 판정을 받았는데 약초로 치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엔진이 고장 난 차량을 망치로 수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대부분 자신의 억울함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정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법률 전문가들은 멀리 있지 않으니 억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담을 해 보는 용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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