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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11-22본문
'형집행정지' _ 제 아버지를 살릴 수 있습니까
필자는 아버지와 사이가 유독 좋은 편이다. 온천에 몸 담그며 한 주를 나누거나, 늦은 밤 시원한 맥주로 하루의 텁텁함을 덜어내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던가. 하여 간혹 부친 사건으로 사색이 되어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보면 유독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
최근 급하게 사무실을 찾은 한 의뢰인이 무거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며칠 안부 전화를 받지 않으시더니 사기죄로 법정구속이 되어 교도소 수감 중이라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알아보니 판결 확정이 되어 있어 상소를 통해 다툴 수도 없는 상태였다.
교도소에 찾아가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확인하니, 은퇴 후 친구와 함께 시작한 사업 과정에서 큰돈이 오고 간 사실이 있었는데 억울하게 공소가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변호인도 없이 제대로 방어권 행사를 하지 못하다 보니 실형을 선고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릴 듯 답답한 후회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아버지는 현재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경우 적절한 대응은 '형집행정지 신청'이다. 징역, 금고 또는 구류의 선고를 받은 자가 심신장애 상태이거나 중병에 걸려 형의 집행이 어렵거나 임신 6개월 이상인 때 등의 일정한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형의 집행을 일정 기간 정지하는 제도이다. 주로 형을 선고한 법원에 대응한 검찰청 검사 또는 형의 선고를 받은 자의 현재지를 관할하는 검찰청 검사의 지휘에 의해 형의 집행을 일시 정지한다(형사소송법 470조 내지 471조). 형집행정지 신청이 있는 경우 검사는 그 사유를 조사하는데, 예를 들어 위와 같은 말기암 환자의 경우 검사가 교도소의 의무관 또는 다른 의사로 하여금 감정을 신청하여 집행정지가 필요한 사유를 심의한다.
문제는 당장 형집행정지 신청을 해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때까지 말기암 환자인 아버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래 전이기는 하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형집행정지 신청 이후 심사결정의 지연으로 사망한 재소자가 10년간 85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는 것을 본 적 있다.
현실을 설명 드리니 의뢰인은 눈물부터 보였다. 손수건을 꺼내드리던 필자는 문득 오래 전 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모기업 회장 부인의 형집행정지 실태가 떠올랐다. 여대생을 공기총으로 청부살해한 뒤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계속 연장되는 형집행정지로 호화로운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케이스를 비교해보면 시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의뢰인의 아버지 사건과 기업 회장 사모님의 사건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작 형집행정지가 필요한 사안의 경우 심사의 신속성 부재가 문제일 것이고, 형집행정지가 필요하지 않은 사안의 경우 심사의 투명성이 문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무규칙 개정 등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말기암 환자와 같이 수감 전 이미 중대한 질병 치료 기록이 있는 경우에는 간이심사제도를 도입해 즉시 형집행정지 신청을 수리하도록 하면 될 것이고, 지병이 없음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신청을 하는 경우 검찰이 임의로 지정한 3곳 이상의 대학병원 의사의 감정서가 동일한 소견일 경우에만 집행정지를 인용하면 될 것이다. 이로써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동시에 긴급한 사안의 신속한 처리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후 아버지와 면회를 끝내고 돌아온 의뢰인은 “변호사님, 제 아버지를 살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에게는 억울하게 수감된 아버지의 해결 불가능한 사연보다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그이를 영원히 떠나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막막하리라. 그 감정을 너무도 이해하는 필자는 “네, 반드시 모시고 오겠습니다”라며 손을 잡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그 애틋한 다짐이 조만간 이루어지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