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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7-22본문
"아버지 장례 치른 지 한 달도 안 됐는데요. 이런 게 날아왔어요."
사무실을 찾아온 40대 남성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대부 업체가 보낸 채무 변제 독촉장이었다. 금액란에는 상담자의 일 년 치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 적혀 있었다. 채무자란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이, 그 아래에는 '상속인 귀하'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분은 아버지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을 장례를 다 치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고인은 몇 해 전 작은 가게를 정리하면서 생긴 빚을 자식들에게 끝내 말하지 않았다. 폐를 끼치기 싫으셨던 것 같다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상속이라고 하면 물려받을 재산이 떠오른다. 그러나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재산만 오는 것이 아니라 빚도 함께 온다는 뜻이다. 고인이 남긴 통장과 집만이 아니라, 고인이 미처 갚지 못한 대출과 보증채무까지 자녀의 몫이 된다.
다행히 선택의 시간이 있다.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 통상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재산과 빚을 모두 받는 단순승인, 모두 받지 않는 상속포기, 그리고 물려받은 재산의 한도 안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이다.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은 법원에 신고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문제는 이 3개월이 어떤 시간 위에 놓여 있느냐다. 장례를 치르고, 고인의 방을 정리하고, 사망신고와 각종 해지 절차를 밟다 보면 한 달이 훌쩍 간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법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만나는 유족들 대부분이 이 기한을 모르거나, 알아도 경황이 없어 흘려보낸다. 부고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이 빚이고, 빚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이 법률 지식이기 때문이다.
더 위험한 함정도 있다. 이 기간 안에 고인의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인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생활비로 쓰거나 고인의 차를 팔아버리는 행위가, 나중에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의 길을 막아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유족에게는 자연스러운 정리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법적으로는 상속을 받아들였다는 의사표시가 되어버린다. 장례 비용처럼 불가피한 지출까지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계는 유족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좁다.
그분은 다행히 아무것도 처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필자는 먼저 고인의 재산과 채무를 조회하는 것부터 안내했다. 사망신고를 하면서 함께 신청할 수 있는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이용하면 고인 명의의 예금, 대출, 보험, 세금 체납 내역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조회 결과 빚이 재산보다 많은 것이 분명하면 상속포기를, 규모가 불확실하면 한정승인을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상속포기라는 말이 가져오는 부담은 있을지언정 이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한정승인의 방식도 있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의 한도 안에서만 갚고, 아버지의 손때 묻은 유품과 기억은 그대로 간직하는 길이다.
한정승인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상속포기를 하면 빚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위 상속인에게 넘어간다. 자녀들이 포기하면 고인의 부모에게, 그다음에는 형제자매에게까지 독촉장이 이어질 수 있다. 온 집안이 순서대로 가정법원에 서류를 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면 한정승인을 하면 상속은 거기서 정리되고, 빚이 다른 가족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혹시 3개월을 넘겼다고 해도 길이 아주 닫히는 것은 아니다.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했던 경우라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뒤늦게 날아든 독촉장 앞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실제로 필자의 사무실을 찾는 상속 상담의 적지 않은 수가 이 기한을 넘긴 뒤에 온다. 그때마다 특별한정승인이 마지막 문이 되어 준다.
슬픔에는 기한이 없다. 그러나 상속에는 기한이 있다. 그 어긋난 두 시계 사이에서 유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 그것이 이 제도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