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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9-12본문
당시 아이의 나이 고작 10살이더랬다. 술을 마시러 가야 한다며 돈을 내놓으라 어머니를 폭행하고 칼로 위협하던 아버지를 명확히 기억하는 의뢰인의 딸은 어머니의 고통과 본인의 무력함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효녀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전액 장학금을 주는 대학에 진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며 가장 빠른 독립을 꿈꿀 수 있는 군인이 되었고, 곪았을 어머니의 속을 달래오며 살아왔다. 두 모녀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긴 세월을 버텨왔다. 다행히 딸은 좋은 남자를 만나 축하받으며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새하얀 드레스 속 가장 축복되어야 하는 그날 그 아버지는 사위에게 술 한잔하게 축의금을 달라고 강요했다.
본인의 삶이 가시밭길임은 나의 선택이었으나 딸아이의 새 출발에 저주스러운 기억을 안긴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필자를 찾아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왜 이리 살아왔냐는 순간의 번뜩이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하셨다. 한참을 상담하던 필자의 마음이 먹먹해 왔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이의 30여 년 세월이 사실 상상되지 않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아내의 재판상 이혼 소장이 남편에게 도달했고 남편은 즉시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해왔다. 결론은 재산분할을 막기 위해 이혼을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증거가 너무도 명확히 남아있던 가정폭력, 자녀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 그리고 본인의 알코올 중독 모두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겠으나 남편의 답변은 “용서를 받았다"라는 것이었다.
교회에 다니며 주님께 용서를 빌었고 주님은 용서했으며 이제 새사람이 되었다는 취지였다. 아이러니하게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본인이 잘못한 부분은 이미 신이 용서하였으니 더 이상 인간의 잣대를 들이밀지 말라는 것 같았다.
문득 과거 필자가 진행한 특수공무집행방해 사건이 기억났다. 피고인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어린 청년이었다. 대학 입학 전 예비 대학생 술자리에서 만취했던 피고인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다 결국 경찰차로 연행되었다. 연행 중 하필 주머니에 있던 샤프를 꺼내었고 운전 중이던 경찰관의 목덜미 부위를 그 샤프로 찍어버린 사건이었다. 다행히 경찰이 많이 다치지는 않았으나 범죄의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아 무거운 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재판부도 이러한 공권력에 대한 범죄를 상당히 무겁게 처리하던 곳이었는데 고민이 참 많았다. 설령 적절한 합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합의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의 사유로 삼을지 의문이었다.
어린 피고인에게 '용서'를 받아오라 요청했다. 변호사가 중재하는 '합의'가 아닌 어쨌건 상해의 피해자인 경찰관에게 '용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트라우마가 컸던 경찰관은 아이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국 추운 겨울 아이는 며칠 동안 경찰서 앞 계단에 무릎을 꿇고 매일 사죄를 드리러 갔다. 성인이 되고 첫 일정이 강의실이 아닌 차가운 경찰서 계단이 되었다.
2주 정도 지났을까. 경찰관은 아이에게 들어오라며 앞으로는 절대 이러지 않아야 한다고 건조하지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필자가 놀란 점은 그 피해 경찰관과 당시 조수석 탑승 경찰관까지 직접 처벌불원서, 탄원서를 적어 재판부에 내주고 심지어 공판기일 출석해 어린 친구의 미래를 생각해 선처를 부탁한다고까지 해줬던 점이었다.
문득 필자의 이혼사건 남편이 용서와 망각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혹은 용서를 권력자들이 하는 사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지나간 고통을 물로 씻어낼 수는 없는 것이고 상대방의 기억을 종이 위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인데 남편이 이야기하는 용서는 쌍방향적 의사소통이 아닌 일방의 통보같이 느껴졌다.
금일 해당 사건 재판을 들어가며 생각했다.
'정말 신은 그를 용서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