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의 사랑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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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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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출근길, 옆집 아이가 반갑게 인사를 해도 무심히 고개를 숙여 답할 정도로 그들의 해맑음이 불편했고, 식당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겪고 있는 소란함보다 과한 불쾌감을 느끼고는 했다.

하여 우리 부부 역시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필자가 답을 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선배님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주, “제 아이를 이뻐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내 아이는 다른가요?”라는 질문을 버릇처럼 할 정도로 아이를 싫어했다. 혹여 본인의 선택으로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닐 나의 아이에게 세상 모든 따뜻함을 듬뿍 심어주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찾아왔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게 태어난 이 아이는 생각한 것보다 나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원래 잠을 자고 일어나던 루틴을 유지할 수 없게 했고, 우리가 주로 밥을 먹는 시간보다 짧은 간격으로 식사를 했으며, 어디가 아픈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 일러주지 않고 울음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라 요구했다. 고요하던 우리 부부는 예상 가능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삶을 포기해야 했고 결국 모든 생활 패턴은 이 작은 아이가 결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계속 노력은 했다. 아이에게는 완벽할 수 없는 시간이었으나 시간을 투자했다. 퇴근 후 바로 TV를 키고 치킨을 시키던 순간은 추피 이야기를 읽는 시간으로, 주말의 늦잠과 여행은 아이와의 동물원 구경으로, 백화점 쇼핑과 인터넷 게임은 키즈카페나 아쿠아리움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아빠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두 무릎으로 기어 퇴근하는 내게 다가왔으며, 이제는 아침 일찍 필자의 침대에 찾아와 일어나라며 큰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를 안고 산책을 나간 어느 저녁, 푸드득 날아오는 새들의 소리에 이 작은 아이는 깜짝 놀라 아빠의 목을 꼬옥 껴안았다. 작은 아이의 가슴을 다시금 꼬옥 껴안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는구나.” 이 아이의 두려움이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 아이의 하루에 이런 감정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 어떤 감정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부성애란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장착되는 신의 선물은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욕구를 잠재우고 타자의 요구에 희생하는 연습, 익숙하던 반복을 처음 만난 생명체에게 맞춰가며 낯선 경험을 계속하는 순간들, 그 모든 것들에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선택이 중첩되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는 대전지방법원 소속 국선변호인으로도 활동하는데, 소속된 재판부는 아동 관련 범죄 사건을 자주 처리한다. 때문에 자주 아동 학대, 유기, 방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그들의 공소 사실을 보면 참으로 공감하기 힘든 범행일 때가 많은데. 아이가 고열로 울고 아픈 데에도 휴대폰 게임에 빠져있어 치료 골든 타임을 놓쳤다든지, 폭행과 욕설로 그 작은 몸에 차마 하지 못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든지, 제대로 된 음식물을 공급하지 않아 성장발달이 제대로 되지 못하였다는 등 도무지 용서하기 힘든 상황들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기까지 연습을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당장 하루하루를 버티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제적 나락의 끝에서 아이를 감내할 육체적, 정신적 허용 가능 에너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 육아의 전선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필자의 작은 깨달음은 “연습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작은 아이의 선택으로 이 세상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시작점을 떠올리고 우리 모두는 사랑이 습관으로 박히도록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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