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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1-15본문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약 2주간 우리 법원은 '휴정기' 제도를 운용한다. 재판이 없는 덕에 휴가를 다녀오시는 변호사님도 많으시고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해외 연수 등을 운용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매년 휴정기를 기다리지만 생각해 보면 이 일을 시작한 이후 휴정기에 쉬어본 적은 특별히 없는 것 같다. 평소 밀린 업무를 처리하거나 새해를 준비하며 계획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주로 이용하고는 한다. 금번 휴정기는 평소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한 아이와 보내려 했으나 새로운 국선 사건이 마음 한편을 뒤흔들어 결국 또 출근을 했다.
신년부터 필자를 괴롭힌 국선은 한 아이 엄마에 대한 사건이었다. 부모 없이 홀로 월세방을 전전하며 아이를 양육하다 보니 제대로 된 양육이 불가능했고 결국 영양부족으로 인해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양육 행위를 소홀히 하는 방임 혐의로 기소가 된 것이다.
공소장 기재 연락처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닿지 않던 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도소에 전화를 해 보니 현재 별건 수감 중이라고 한다. 찾아가 보니 아이를 위한 생필품을 훔치다가 별건으로 기소되었고 벌금형이 나왔으나 이를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상태였다.
아이는 별도의 보호시설에 맡겨진 상황이었고 엄마는 아이를 너무도 그리워했다. 급한 마음에 검찰청에 달려가 벌금을 대신 납부하고 최대한 빠른 석방을 하게 도운 뒤 필자의 사건 관련 상담을 이어갔다. 본인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고 불우한 가정에서 가출하여 생활하였으나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고 이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채 해결 방법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다가 기소가 된 것이었다.
재판부에 최대한의 선처를 구하며 피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변론은 다 했으나 마음 한편 뭉친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다. 피고인에게 선처가 이루어진다 하여 이 아이와 더 작은 아이의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자에게 누군가의 거대한 삶을 끌어안아 해결하거나 책임을 질 재량도 없었다. 이들을 외면할 용기도 책임질 능력도 없는 비겁함만이 남았다.
필자의 소속은 아동, 성범죄 전담 재판부이고 매번 이런 사건들의 반복이라 조금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런 류의 상황에 공명할 때 느껴지는 먹먹함은 도무지 쉽지 않다.
공판을 마친 뒤 힘내라는 말과 함께 뒤돌아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다시금 계단을 달려 올라가서는 보육원의 아이에게 작은 옷이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혹시 아이 옷 사이즈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아이의 엄마가 머뭇거리길래 괜찮다며 그냥 작은 내의 한 벌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했다.
“100? 120? 정도 되려나요?” 재차 묻는 필자의 말에 아이의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옷을 사줘 본 적이 없어서 사이즈 기준을 잘 몰라요.” 괜찮다며 보육원 선생님께 물어보겠다고 답한 뒤돌아 내려오는 계단에서 꺽꺽 눈물을 참아냈다.
분유와 기저귓값이 없어 기소가 된 아이에게 옷 사이즈를 묻는 바보 같은 인간이 어디 있나 하는 나에 대한 원망과 함께 그이의 삶에 대한 슬픔이 너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새해 첫 출근일. ‘보내는 이’ 란에 아이 엄마의 이름을 적어 보육원으로 작은 선물을 보냈다. 정성스럽게 포장해 달라는 부탁의 문구와 함께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엄마의 한 마디를 적었다.
소득수준이나 교육정도 등에 따른 사회적인 불평등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디폴트 값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같은 모습의 삶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능력이나 주어진 현실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부정하고 갈 수도 없다.
다만 같은 시공간을 나눠쓰는 같은 공동체 속에서 '있어서는 안 될 상황' 속에 있는 이들을 볼 때면 늘 가슴이 아프다. 2025년 한 해 혼돈 속의 우리 사회에 이런 이들을 위한 작은 희망이 반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