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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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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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갈 즘이었다. 재판 준비 중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눈이 잘 안 보여 오전 일찍 안과를 가보니 망막박리라는데 골든타임이 짧아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망막이 안구 내벽에서 떨어져 나와 시신경에 영양 공급이 되지 않고 그 상태가 오래되면 시력을 영구적으로 잃게 되는 심각한 안구 질병이었다. 고도근시나 외부 충격 등으로 오는 질병인데 눈앞에 파리가 오가는 듯한 느낌이나 빛이 과하게 보이는 느낌이 있다면 즉시 병원에 가야 하는 상당히 중요한 질병이었다.

완치도 어렵지만 회복도 쉽지 않다는 말에 식겁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 수술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대학병원에 즉시 수술 가능한 교수님을 만나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이 가능했고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조금씩 회복 중에 있다. 초진 의사 선생님의 빠른 판단과 수술 가능한 교수님과의 만남이 시력 회복을 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수술 이후 거의 매주 외래 진료를 갔다. 여러 가지 검사들을 하며 짧게나마 수술을 집도해 주셨던 교수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진료는 매주 오전 9시였는데, 필자가 놀란 것은 의료대란 때문인지 한 교수님 당 상당히 많은 외래 환자분들이 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 수술을 집도하시던 교수님은 엄청나게 빨리 말씀하시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았고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모두 마주하기 힘든 상황처럼 보였다. 문제는 필자 역시 아내의 상태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많다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외부 활동, 목욕이나 샤워가 자유롭게 가능한 것인지, 눈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어도 되는지 등등 사소한 질문과 이에 대한 상세한 해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대기 중인 수많은 환자들의 기다림 그리고 빠른 대답 속에서 느껴지는 교수님의 다급함을 온몸으로 느낀 채 현재 수술 경과가 괜찮은 것인지 정도만 여쭐 수밖에 없었고 교수님도 그 이상 답해주실 여력은 없어 보였다. 30분을 기다려 15분 검사를 하고 1분 안팎으로 교수님과 대화를 하는 진료를 수차례 반복했다.

약 두어 달 외래 진료를 다니며 필자는 문득 올 한 해 나의 말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술자리 심한 다툼으로 특수상해 혐의를 받고 구속되었다며 통곡 속에 찾아오셨던 어머님, 2억에 가까운 전세보증금을 들고 임대인이 해외 도주해버렸다며 허탈감에 찾아온 신혼부부, 아버지의 항소심 진행 중 보석 신청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인용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며 모든 답변을 하나하나 적던 따님, 판결 확정 이후 소송비용 부담과 관련된 신청 사건 그리고 집행 과정 등 상당히 많은 실무 업무를 재판 시작도 안한 상태에서 궁금해하시던 아버님 등 낯선 사법 절차 안에서 등대가 되어줄 이 하나 없어 망망대해 위에 있던 수십 수 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한 한 해였다.

궁금한 점이 너무도 많을 이분들에게 필자는 외래 교수님과 마찬가지 모습이었던 것 같다. 바쁘다는 이유 또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들의 궁금점에 하나하나에 상세한 답변을 드리지 못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한정된 시간과 여력 속, 중요하지 않은 답변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좋은 결과를 위하여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홀로 판단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정보나 상세한 과정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살며 처음 겪어보는 낯선 시간 속 당사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위로의 시간을 바랐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을 위해 전문 지식을 활용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고 자부하며 지나온 한 해였지만 오히려 가장 절박한 상황 속 이들이 필자를 인지하고 배려하며 인내해 주던 한 해가 아니었을까.

일만 잘하는 변호사로 기억되기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새해의 다짐을 하며 2024년 마지막 날, 여전히 불안 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을 모든 의뢰인 분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궁금한 점이 없으신지 여쭤보는 시간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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