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아이의 층간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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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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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모두 걸음이 느렸던 것을 어찌 알았는지 아이 역시 늦은 시기에 걸음마를 시작했다. 2년간 성숙한 두뇌만큼 자유로운 움직임이 허락되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딸은 걷기 시작하며 본인의 걸음걸음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파 위를 올라가며 까르륵 웃기도, 한정된 공간에서 꼬물거리던 움직임의 범위가 조금씩 확장되기도 했다. 며칠 즘 되었을까 아랫집에서 층간 소음으로 힘들다며 올라왔다. 젊은 남자였다던데 아내가 정말 죄송하다며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사죄를 하고 우선 일단락이 되었다고 했다.

야근 중이었던 필자가 퇴근해 보니 아내는 연신, 아이의 발걸음마다 "천천히! 조용히!"를 외치고 있었고 당시 현장에 계셨던 장인 어르신은 늦은 걸음마와 작은 몸짓 그리고 잦지 않은 뜀박질조차 이해 못 하는 공동주택 아랫집에 조금은 화가 나 계셨다.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위 아랫집의 격렬한 층간 소음 사태로 상담을 오시는 분들을 간접 경험하였으나 필자 역시 직접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딸 아이의 움직임은 그리 과격하지 않아 보였고, 아이의 활동 공간 중 대부분인 거실 일부에 이미 5cm 두께의 매트를 설치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어쩌지..."라는 마음으로 귀가하며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안에서 들리는 "다다다다" 소리가 느껴졌다. 아마도 아빠의 퇴근을 기다렸던 딸의 흥분된 발걸음이었던 것 같다. 달려가 아이를 안아주는데 문득 연애 시절 아내가 좋아한다며 들려주던 노래가 떠올랐다.

루시드 폴이라는 가수의 [꿈꾸는 나무]라는 노래였는데 대략 가사가 이러했다.

"내가 자라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따뜻한 집, 편안한 의자, 널찍한 배, 만원 버스 손잡이, 푸른 숲, 새의 둥지, 기타와 바이올린, 엄마가 물려준 어느 아이의 인형.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순간 아, 우리의 잘못이구나 깨달았다. 나에게는 기쁨이고 내 아이에게는 희열인 이 작은 두 발의 발자국이 누군가에게는 화살로 다가갔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활동 반경이 거실인 것이지 아이가 엄마나 할머니를 찾으며 달려가는 거실에서 주방, 주방에서 현관, 현관에서 복도 등의 10m 이상 이동 거리에는 매트가 없었던 것이었다. 즉시 아이가 뛸만한 공간 전부에 매트를 주문해 설치했다.

다음 날 아랫집에 작은 선물과 편지를 붙여두었다. 대략 죄송하다는 내용과, 우선 매트 시공을 했으나 소음이 계속되면 다시금 해결해 볼 테니 언제든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이 지나 아랫집이라며 문자가 왔다, 각색 없이 그대로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아랫집입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생후 60일 아이가 있는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서둘러 조치를 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입장에서 아이의 발걸음을 저희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윗 층 부부와 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며 편안한 밤 되세요. 앞으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합니다.”

몇 주 즘 지났을까. 딸과 함께 산책을 다녀오던 날, 엘리베이터에서 100일 즘 된 아이와 부부를 만날 수 있었고, 우리 아래층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고 아이의 고개를 숙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시켰다. 어리둥절한 딸 아이의 얼굴에 아랫집 부부는 괜찮다며 웃음을 주셨다.

이처럼 해결되는 사건이 거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층간 소음이 쉽게 해결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층간 소음이 누구의 책임이라는 결론을 내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분쟁의 정점에서 늘 대리전을 뛰는 필자의 직업에 비추어 생각해 보건대 비상식적인 상황들을 제외하고 우리 대부분의 분쟁은 '발화점'에서 시작된다.

이 발화점에 도달하기 전 내가 발화점의 온도를 높이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그리고 특히나 그 원인이 내 아이의 화살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필자와 유사한 상황에서는 불길이 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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