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작성일24-06-13본문
의외로 상속 관련 분쟁만큼 많은 상담이 부조금에 대한 문의이다.
X의 자녀 A, B, C는 장례식 마지막 날 부조금 정리를 시작했고 대기업에 다니는 장남 A 씨는 총 조문객 600명 중에 300명 이상이 본인 회사 소속이니 부조금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장남의 말이 언뜻 듣기에는 맞는 이야기 같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동생들의 감정이다.
간혹 이런 사소한 문제가 격한 분쟁으로 이어져 상담을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 우리 법이 정확히 어떠한 판단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조금은 상속 지분으로 나누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
우리 대법원은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부조금 또는 조위금 등의 명목으로 보내는 부의금은 상호부조의 정신에서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고 장례에 따르는 유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과 아울러 유족의 생활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증여되는 것으로서, 장례비용에 충당하고 남는 것에 관하여는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사망한 사람의 공동상속인들이 각자의 상속분에 응하여 권리를 취득하는 것으로 봄이 우리의 윤리감정이나 경험칙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2. 8. 18. 선고 92다2998 판결] 는 법리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결국 망인 재산의 상속권자들이 각 상속지분에 맞추어 부조금을 나누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판례의 태도에 동의하나 이대로 따를 때 발생하는 문제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에서 부조금이나 축의금은 결국 받고 다시 돌려주는 일종의 채무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앞선 장남 A 씨처럼 600명 중 300명 이상으로부터 받은 부조금이 결국 다시 돌려줘야 하는 채무로 남은 상태에서 그중 200명 분의 부조금에 대한 권리만이 인정된다면 장례를 치르고 100명으로부터 받은 부조금만큼의 채무가 발생하는 상태가 발생하고, 이것이 장례로 인한 유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생활 안정에 기여하는 목적으로 증여되는 성격의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판례의 태도에 동의하는 이유는 만일 부조금의 지급 대상에게 그 권리가 있다고 해석해 버린다면 조의를 표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망자의 형제자매들의 지인들이고 조의를 표하러 오는 사람이 없는 망자의 배우자 혹은 자녀가 있는 경우, 망자의 사망으로 인해 그 형제자매들만이 모든 부조금을 가져가야 한다고 해석되는 법 감정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적인 분쟁이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에서의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만 어렵더라도 가족들 사이의 적절한 합의만큼 좋은 것이 없다. 돌아가신 망자는 본인의 빈소에 찾은 사람들이 남겨진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지급하는 돈으로 분쟁이 발생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망자와의 이별의 시간에 자녀들 간의 분쟁이 화두가 되어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떠난 자를 기억할 기회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하루 종일 이어진 상담과 재판을 끝내고도 녹초가 되기보다 쌩쌩한 날들이 있다. 재판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원하던 선고가 이뤄지고, 상담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순간들이 반복돼 오히려 사무실에서 힘을 얻어 퇴근하는 운수 좋은 날이 있다. 지난 수요일이 그랬고. 퇴근 후 현관에 마중 나온 딸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더 큰 에너지를 받았다.
순간 이모의 전화가 울렸고, 이 시간에 연락하실 분이 아닌데 하며 받은 전화기 너머에는 할머니의 임종을 알리는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늘 할머니의 따스함을 기억하고 감사해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어리석은 시간들이 후회만 되었다. 더 감사해하고 더 기억하며 이를 자주 찾아뵙고 꼭 안아드리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 다 변제할 수 없는 빚을 갚아나갔어야 했다.
우리 모두 같은 후회가 찾아올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휴대폰을 열어 통화 버튼을 눌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