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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11-23본문
청년전세사기, 그들은 당신을 믿었다.
변호사로서의 걸음을 뗄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사수 변호사님은 '프로'라는 단어를 자주 쓰셨다. 실수로 지적당할 때 듣던 단어인데 “박 변호사, 프로가 왜 그래”라며 전문가로서의 기본을 꾸짖으시던 그 표정과 어투가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박혀 업무처리에 큰 도움이 된다.
Professional, 전문가는 Professen(종교적 의미로 '서원'을 하다) 혹은 Pro+fess (공개적으로 말하다) 라는 어원을 갖는다고 한다. 즉 도덕적인 기준에 부합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할 정도의 수준을 갖는 자를 의미할 것이다. 오늘은 전문가의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22년 12월, 이슈였던 인천 미추홀구 빌라왕은 2000여채의 빌라를 소유, 피해자만 300여명이 넘는다고 했다. 최근 대전에서도 이러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상당수 발생하고 있다. 모든 형사 사건이 그렇지만, 범죄자들의 수법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피해자를 속이고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악의를 품은 자가 약아질 수밖에.
다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당히 잘 짜여진 조직적 범죄라는 것인데 특히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함께 공모한 점이 특징이다. 전문자격 소지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를 이용한다면 이러한 사기 범죄가 굉장히 용이해진다. 징역형을 앞둔 피고인을 속이는 변호사, 난치병 환자를 속이는 의사가 나타난다면 개인들은 삶과 목숨이 달린 궁박한 상황 속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최근 일어나는 조직적인 전세사기 사건의 원인을 일부 전문가들의 악의에서 찾는다. 건축주 A와 공인중개사 B는 무자본 대출로 X건물을 짓고, 임대인 C를 모집한다. X건물은 준공과 동시에 시중은행 대출 담보로 제공이 되어 이미 깡통 건물이 된다. 이후 공인중개사 B는 주로 사회초년생들을 상대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청년전세자금대출 상품을 이용하면 연 1%의 이율로 1억짜리 전셋집을 구할 수 있어서 사실상 월 10만원에 보금자리를 구할 수 있다며 임차인을 모집한다. 월 40~50만 원의 월세가 부담스러웠던 청년들은 1억원의 전세자금대출을 실행하고 집주인 C에게 이를 지급한다. 이후 A와 B 그리고 C는 전세보증금을 나누어 쉽게 탕진하고, 이후 반환기일이 다가오면 잠적하는 것이다. 이후 은행에서 채무자인 임차인들에게 즉시 상환 요구하는 악몽이 시작된다.
청년들이 쉽게 속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세계약 전에 등기부등본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쯤은 쉽게 알 수 있는 나이의 초년생들이 1억 원이라는 큰 돈을 이리도 쉽게 빼앗긴 이유는,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선순위 근저당이 10억이나 잡혀있는데 괜찮을까요?” 라는 질문에 “건물 가치가 30억이 넘어서 경매에 들어갈 위험이 없다”거나 “임대인이 수십채 건물이 있어서 1억 원 전세금 못 돌려줄 이유가 없다”는 거짓된 정보로 안심 시키기도 하고, 선순위 임차보증금 액수를 속이거나 공인중개사협회에서 보증하는 공제계약에 따라 보증금 1억 원은 충분히 담보된다. 실제로는 각 공인중개사의 공제기간 중 발생한 모든 중개사고에 대하여 1억원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사실상 공제증서로 충분한 피해 회복은 어렵다는 등의 기망을 서슴지 않았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겠으나 이번 조직적인 전세사기 사건은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악의를 품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와 커다란 영향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들이라고 본다.
필자가 어릴 적, 공인중개사라는 표현은 아마 없었지 싶다. 할머니는 늘 마을 입구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를 복덕방 김씨라고 불렀다. 복과 덕을 가져오는 공간(福德房)이라는 뜻의. 모든 공인중개사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겠으나 조직적 범죄의 피해자가 된 청년들에게 믿고 의뢰한 공인중개사들은 복과 덕을 가져다준 분들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