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탁 전세사기, 끝나지 않는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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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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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결혼을 한다던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전세를 살고 있었고 계약 기간 만료가 약 1년 이상 남은 상태인데, 경매개시결정 안내문이 집 앞에 붙어 어찌해야 하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필자의 주된 업무 분야가 전세사기이기는 하나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아 걱정되는 마음에 즉시 전화해 보았다. 단순히 경매에 넘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형적인 신탁 사기를 당한 것인데, 일반적인 깡통전세 사기 사건보다 복잡한 내용이다.

신탁사기란 한 마디로 '집 주인도 아닌 자와 계약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탁이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통상의 임대인은 부동산을 근저당권부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선순위 근저당권부 채권자인 금융기관은 훗날 경매절차에서 1순위 채권자가 되고 그 이후 임차인들의 경우 통상 전입 순서로 배당을 받는다.

그러나 신탁 부동산의 경우 이렇게 근저당권 설정을 하는 것이 아닌 소유권 자체를 대외적으로 신탁회사에 넘기고 신탁회사는 금융기관에 수익권 증서를 주며 이 수익권 증서를 담보로 금융기관이 임대인에게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임대인과 신탁회사 사이 신탁 계약이 체결되면 해당 부동산은 대외적으로 신탁회사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임대인은 대외적으로 해당 부동산에 어떠한 권리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이 신탁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선 개념이어서 전 소유자인 임대인에게 속기 쉽다. 필자의 후배 역시 X 부동산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A 씨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1억5000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지급한 것인데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계약 당시 이미 소유권은 신탁회사인 B신탁회사의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즉시 해당 신탁계약의 내용이 담긴 신탁원부를 열람하여 확인해 본 결과 임대인이라던 A는 B신탁회사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사용, 수익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해당 부동산의 경매절차에서 필자의 후배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 A와 체결한 임대차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배당요구신청 자체부터도 불가능해지는 황당한 상황이 온다.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필자의 후배는 그 부동산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이러한 신탁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등기부등본 상 '신탁'이라는 문구가 나오자마자 신탁원부 등을 확인하고 임대인이라 주장하는 이에게 그러한 사용, 수익 권리가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말이 쉽지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조만간 청첩장 모임을 하자던 후배에게 절망뿐인 상담을 마치고 나서해 관련 서류를 전부 이메일로 보내 보라고 했다. 전세계약서,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 어디에도 신탁 부동산이라는 설명은 보이지 않았다.

공인중개사가 한 패였던 것인지 아니면 신탁 부동산 중개업무를 처음 해 본 것인지는 몰라도 소유자가 아닌 사람의 물건에 1억 5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증금을 맡기라 등 떠민 꼴이었다.

즉시 개업공인중개사를 상대로 한 소송 및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한 공제금 청구 소송을 통해 공제금의 범위인 1억 원의 한도 내에서는 피해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하고는 소송에 들어갔다.

서울의 명문 공대를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필자의 후배는 꼼꼼한 성격이다. 불확실성이 싫다며 주식투자도 하지 않았고 해외여행을 갈 때면 분 단위로 일정을 짜던 버릇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신혼부부로 첫 출발을 하기도 전에 만져보지도 못한 거금의 빚을 지고 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등기부등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그이는 절망했다.

최대한 피해를 줄여볼 테니 너무 힘들어 말라는 문자를 뒤로, 과연 끝나지 않는 전세사기의 원인이 임차인들의 불찰 때문인 것인지 우리 사회에 내재된 위험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닌지 전세 제도 자체를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밤이었다.

전세 사기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경매개시결정문을 받을 것이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전세대출을 통해 고액의 보증금을 임대인들에게 송금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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